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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 들꽃 여정] ⑪ 산에서는 모두가 친구

기사승인 2019.04.02  00: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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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랑탕빌리지에서 해를 이고 하산

포터

랑탕빌리지(Langtang Village) Travellers guest house(3,500m)에서 아침을 맞았습니다. 계곡 사이에서 눈부시게 떠오르는 태양빛이 설산을 더 희게 보여주는 절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아름다운 자태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까지 이어지면서 자르르 햇빛에 녹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산에 올라왔을 때를 더듬어 보면 완만한 하산이 예상됩니다.

랑탕은 네팔에서 1971년에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입니다. 오지 탐험가 윌리엄 틸만(William Tilman, 1898~1978)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계곡이라 극찬했던 곳이고, 20여 년째 네팔에서 목회활동을 하고 있는 윤종수 목사가 깊은 감명과 함께 은혜를 받았다는 계곡입니다.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은혜를 받은 곳과 감명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광경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트레킹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가 돼서야 그 은혜를 받았다는 곳은 어느 한 군데의 특정한 지역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위대한 자연의 힘과 신의 권능은 히말의 전 지역에 걸쳐서 펼쳐져 있었습니다. 네팔 사람들이 산을 신성시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감히 산을 정복하려들지도 않지만 산에 들면 발자취를 따라 경문이 적힌 깃발을 걸고 신을 숭배합니다. 산간에서 뿐만 아니라 다리, 마을 입구, 가옥 곳곳에서 물결치듯 바람에 휘날리는 색색의 깃발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긴 줄에 정사각형의 천을 만국기처럼 달아놓은 타르초(Tharchog)는 마니차(prayer wheel)와 비슷한 의미로 바람을 타고 깃발에 적힌 불경이 멀리 퍼져나가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랑탕은 안나푸르나, 에베레스트(쿰부)와 더불어 네팔 히말라야 3대 트레킹 지역 중 하나인데 2015년 네팔 지진이 발생했을 때 가장 피해가 심했던 곳 중 한 곳으로 제가 처음 네팔을 다녀온 2개월 후인 2016년 6월에 문재인 대통령도 트레킹 겸 랑탕을 찾았다가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랑탕빌리지 지역은 야크를 방목하고 농사를 짓는 주민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던 마을이었는데 지진으로 능선 위 호수가 붕괴되면서 빙하와 토사가 흘러내려 통째로 사라지기도 했습니다.

(좌)지진 당시의 산사태 흔적,  (우)지진으로 무너진 집

롯지 중 몇 곳은 한국인이 운영에 관여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그 중 갱진곰파(Kyanjin Gumba. 3,800m)에서 묵었던 게스트하우스는 한국에서 다년간 이주노동자로 일했던 네팔인이 운영하는 곳인데 태극기와 함께 온통 한글 일색인 카드가 벽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는 포터인 30세 푸르빠(Phurpa)의 친척이기도 합니다.


■ 롯지에서의 하룻밤 경비

롯지의 기념품 판매대


바람이 찹니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3시간가량 내려간 곳이 고라타벨라(Ghoda Tabela. 3,002m. 지명을 그대로 읽으면 ‘고다 타벨라’인데 현지인들은 ‘고라 타벨라’로 발음합니다.)이고 거기서 점심식사를 할 예정입니다.
랑탕에서의 숙박비는 1인 2500원, 2인 5000원입니다. 콜라 4500원, 스프 4000원, 팬케이크 4500원, 와이파이 카드 10000원, 블랙티 900원, 계란 1000원, 롤휴지 2500원을 지불했습니다.
그 외의 메뉴는 밀크티가 1300원, 레몬차가 1300원, 핫쵸코 1500원, 라이스푸딩 4000원, Plain Rice 4000원, Egg Chowmein 5500원, Cheese Chowmein 6000원, Egg Fride Rice 5500원, Egg Vegetable Fried Rice 6000원, Mixed Fried Rice 6500원, Pizza(plain) 5000원, Tuna Flsh Pizza 6000원, Dressing Salad 4000원, Pancake 4000원, Coke/Fanta/Sprite 3500원, Beer 7500원 정도 합니다. 이 금액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 비싸지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조금씩 싸지는데 큰 차이는 없습니다. 롯지마다 라면이 진열장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평지인 시내에서 식사 한 끼에 보통 1500원인 점을 감안하면 롯지에서의 메뉴들이 비싼 것처럼 보이지만 운반비를 생각하면 그다지 비싸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롯지(게스트하우스)에서 주인과

햇빛이 강열해서 선글라스를 착용하려고 안경집을 열었는데 안경은 없고 거즈만 들어있네요. 어제 야크 밀크를 주문해 마셨던 집 울타리에 모자와 선글라스를 걸쳐놓았을 때 마침 불어온 센바람에 날아갔는데 선글라스 생각은 못하고 모자만 집어온 것 같습니다. 회수하러 가려면 1박2일 잡아야 합니다.

■ 지진 피해와 흔적들

9시 40분, 지붕이 낮고 츨입문이 작아 기어들어가야 할 만큼 허름한 집에서 82세 된 노인을 만났습니다. 그는 무릎에 관절염이 있는지 벌어진 다리를 이끌고 야크 밀크(Yak milk)를 장작불에 끓여 내주었습니다. 약간 시큼한 맛입니다. 어제 다른 집에서 마셨던 밀크는 달콤했습니다. 노인은 지난 2015년 지진 때 부인과 두 아들 그리고 기르던 가축 모두를 잃었다고 합니다. 혼자가 된 노인은 가족을 잃은 집터 한쪽에 근근이 엮어 복구한 집에서 생을 마감할 날만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지진 전에 ‘세계테마기행’ 프로에 부인과 함께 출연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푸르빠도 스탭들의 일행이었습니다.

야크밀크를 끓이고 있는 82세의 가족 잃은 노인과 노인의 집

노인의 집 근처 주택 네 동은 집과 함께 살던 주민이 흔적도 없이 계곡 아래로 사라지고, 마당에서 일하고 있던 중년의 남자는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고 표정 없이 담담하게 말합니다.
대다수 생존자들은 복구해서 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살던 터전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했습니다. 실제 집터였던 곳이 다수 보입니다. 벽돌 조각과 철근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흙속에 매몰돼 있는 것을 트레킹 내내 볼 수 있었습니다. 어느 마을이나 지진의 피해를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속수무책으로 사상자가 발생할 정도로 마을 위치는 산사태를 피할 수 없는 지형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계곡을 아슬아슬하게 둘러서 힘들게 올라온 둔덕에는 다리를 지탱하고 있던 굵은 와이어줄이 계곡 아래로 늘어져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구름다리를 건너고 있었다면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사라졌을 것입니다.

롯지(게스트하우스)

애초 지진 전에 있던 길은 무너져 내린 흙더미와 자갈에 묻히고 그 위 또는 옆에 새로 난 길이 완연합니다. 걸어간 길 흙더미 속에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실종자가 묻혀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 적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주검이 됐을 실종자들의 영혼이 평안하시기를 빕니다. 환생을 믿는 힌두교의 신이 그들을 인도하기를 빕니다. 끔찍했던 고통과 공포에서 벗어나 위령비에 기대어 놓여있던 사진 속 표정처럼 환한 웃음을 찾았기를 빕니다.

(위)지진희생자 위령비,  (아래)지진희생자 위령부 하단

점심식사를 한 곳은 올라갈 때 숙소로 이용했던 Hotel Tibetan(Ghoda Tabela. 3,008m)입니다. 식당(휴게소) 출입문 옆 벽에 현상금 25,000USD를 내걸고 실종자를 찾는 전단이 붙어 있습니다. 하지만 지진 때 매몰된 시신은 위치를 알 수가 없어 찾기가 불가능합니다.

(좌)지진희생 실종자를 찾는 전단지,  (우)지진희생자의 가족이 놓은 사진

■ 숙소에 도착할 즈음에 비

오후 4시를 넘기면서 구름이 잔뜩 끼더니 빗방울이 떨어지다 맙니다. 계곡 아래에서부터는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산봉우리마다 구름이 걸쳐지며 내려오는 것이 한바탕 비를 쏟아 부울 기세입니다. 서둘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히말에서 녹아내린 눈이 계곡물을 불리며 내려가는 소리가 바위너설에 부딪혀 무섭게 들려옵니다. 잔뜩 고였다가 떨어지는 물소리는 굉음에 가깝습니다.

가까스로 숙소에 도착해서 배낭을 내려놓는 순간 몇 차례 천둥이 치더니 곧이어 비와 함께 번개가 산비탈을 깎아낼 듯 몰아칩니다. 산꼭대기에서부터 큼지막한 바위덩이가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위압감에 사로잡힙니다.

생활용수로 계곡물을 끌어다 사용하는 주민

숙소는 호텔이란 이름을 사용하지만 와이파이가 안 되는 지역입니다. 휴대폰 충전도 안 되고 헤어드라이어를 비롯해서 전기를 사용하는 물건 일체를 이용할 수 없습니다.
화장실은 물론 샤워룸에는 전등이 없습니다. 네팔은 휴지가 없는 문화이니 산중에서는 더더욱 계곡물을 받아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샤워실 물은 처음엔 미지근하다가 종내 식어버립니다. 낮 동안에 태양열로 데워놓은 물을 사용해야 돼서 오후 6시를 넘기면 미지근한 물마저도 기대할 수 없고 물 자체가 부족합니다. 말하자면 물이 많이 소요되는 샤워 따위의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지요. 양치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수로 간단히 해결하는 쪽을 택하게 됩니다.

■ 산에서는 모두가 친구

지난 닷새 동안 한국인은 한 팀 만났습니다. 양산에서 농협조합장을 지내고 마음수양 겸 여행을 왔다는 분입니다. 그 외에 아일랜드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영국 싱카포르 캐나다 중국 일본 팀을 만났습니다. 랑탕 지역의 게스트하우스에 묵는 사람들 전원을 트레커로 간주할 때 랑탕 트레킹을 하는 팀은 1일에 20팀 전후 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중에는 유럽인이 가장 많습니다. 팀이라고 하지만 한 팀이 보통 두 명 정도입니다. 많으면 대여섯 명 됩니다.
언어소통이 쉽지 않지만 몇 개 되지 않는 단어와 손짓만으로도 서로 의사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산에서는 나이 불문, 국적 불문. 성별 불문하고 전부 친구가 된다는 말이 실감되는 하루였습니다.
양철 지붕을 뚫을 것 같은 빗소리 옆에서 열한 번째 편지를 드립니다(03.25 월).

이택규 기자 we-e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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