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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와 오디

기사승인 2019.06.09  11:4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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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아프다. 단오(端午) 전날이 아버지 기일인데 제사를 못 지낸지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언니집 주위엔 창포와 해당화 등이 피어나고 산뽕나무에서는 오디가 길에 까맣게 떨어졌다. 대접으로는 다섯을 채운 만큼의 양을 주워 나뭇잎과 흙들을 씻어내고 언니가 두고두고 먹으라고 냉동실에 넣었다.

지난달에 수원 장안문을 걸어보자는 친구들의 제의에 동의하고 나는 조금 일찍 집을 나와 잠시 경동시장을 들렀다. 홍어회무침을 살까했는데 가게는 문을 안 열었다. 과일가게에서 산뽕나무 열매보다는 튼실한 오디를 두 상자 샀다. 난 이미 흥정을 마쳤고 과일가게 주인은 오디를 포장하고 있었다.

오디를 한번 씻어야 하죠?
아니요. 이건 그냥 먹어야 돼요.

오디를 집었던 엄지와 검지손가락 손톱이 새까매졌다. 오디를 먹고도 안 먹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했던 언니의 말이 생각났다. 입에 넣은 오디는 달고 씹는 식감이 젤리보단 덜 달고 맛나다. 비구니스님이 나보다 먼저 오디 옆에 서 있었던 걸 나는 비로소 눈치채었다. 스님이 또 오디값을 물었다. 오디는 얼마에요?
그러니까 과일 중에 무얼 부처님 앞에 놓을까 사려 깊게 생각 중이었음이 짐작되는 분위기였다.

스님! 제가 오디 두 상자를 사드릴게요!
아.
고맙습니다.

나는 매대에 남은 두 상자에 손짓을 하며 이것도 마저 따로 싸주세요 라고 주문을 했다. 스님은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이름을 알려주세요. 기도 중에 기억하겠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집은 어디세요? 고려대 근처입니다.

과일가게 주인할머니도 굽은 허리를 펴며 나도 거기 산다고 해서 반가웠다. 스님이 계신 곳은 개운산이라고 했다. 개운산이 있는 곳에는 개운사와 보타사라고 미륵불이 있는 곳도 있긴 하다.

제가 있는 절은 개운중학교 옆입니다. 그 옆엔 신학교가 있다고 했더니 스님도 알고 있다고 했다. 나는 신사임당이 그려진 지폐를 이미 주인할머니에게 건네었었다. 배추잎색으로 두 장만 거스름돈으로 달라고 했다.

스님 짐이 많으시네요. 저는 수원을 갑니다.
먼데를 가시네요. 잘 다녀오세요.

스님의 인사말이 따뜻했다. 나는 오디를 싼 봉지를 들고 제기동 전철역으로 향했다.
이글을 쓰는 동안 벌써 수원역에 다다랐다.

김순조 기자 dd998@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여성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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