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립소록도병원장 『신정식』
출간 2019년 5월 30일 / 백진앙 엮음 / 도서출판 주목
소록도의 아버지 <신정식>은 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후 “소록도에서 사람답게 사는 방법의 출구를 보았다.”고 술회한다.
신정식은 40여 년 전의 소록도병원장이다. ‘소록도가 어디쯤 있지요?’ 70년대의 소록도는 누구나 듣기조차 언짢은 이름이었다. 쓰레기를 집 밖에 내놓듯, 육지의 한센인을 바다 건너에 버린 곳. 이곳에서 6년은 의사로, 12년은 원장으로 있었다. 여느 의학도처럼 의대 교수가 되길 바라던 젊은이가 왜 모두가 고개를 돌리는 ‘문둥이’ 섬으로 갔는가? 처음 한국전쟁 때 소록도에 들어가서는 의사의 신분임에도 먹는 일이 궁해 배급쌀로는 열흘을 못 넘겨 노상 죽으로 때웠다. 부인이 시댁에서 쌀을 얻어오려 하자, “환자도 못 먹는데 나만 배불리 먹을 수 있겠는가.”라며 빈궁을 견딘다.
그는 한센인이 소록도의 주인이며, 의사와 간호사 그 외 직원들 모두는 한센인을 주인으로 모셔야 한다는 지론으로 소록도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정년퇴임한다.
그는 퇴임 후에도 매주 한두 차례 지팡이를 짚고(그는 다리 한 쪽이 짧은 장애인이었다.) 한센인 마을에 무료진료 다니기를 계속한다. 그리고 주머니에 돈이 잡히면 배 아파하고, 넥타이 하나 못 샀다. 더없는 효자였던 그는 선친 묘에 비석조차 못 세우고 1994년 1월 6일, 70세에 재산 9만4천원만 남기고 죽었다.
그는 “가난하고 불행한 저들에게서 가장 순수하고 경건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다. 내 생애 최대의 행운이었다.”라고 말했다. ‘최대의 행운’이라고? 과연 가난과 불행에서 빛이 나오는 것일까?
엮은이 백진앙은 “지금까지 소록도 주인인 한센병 환자의 생활상과 이들이 살아낸 애환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한 기록이 없다. 누군가가 남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훗날 저들의 위대함은 존재하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라고 말하며 소록도에 대한 기록이 없음을 안타까워 한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끝을 맺는다.
“한센인과 소록도를 사랑한 아버지 원장, 청백리, 효자. 능력이 아니다. 가슴의 사람이었다.”
필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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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 책을 구입하려는 분은 엮은이 백진앙(010-3359-2458)에게 직접 문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도서출판 주목 刊 『전 국립소록도병원장 신정식』 |
이택규 기자 we-e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