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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00년 최악의 보도 10선 뭐길래

기사승인 2020.03.05  09:4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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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 왕실에 대한 찬양, 윤봉길 의거는 흉악한 행동, 유신체제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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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3월5일(금) 창간된 조선일보는 2020년 3월5일(목) 창간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지난해 ‘조선동아 100년 거짓보도 100년’이라는 아카이브 홈페이지(realchosun.com)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일제에는 친일, 독재에는 부역을 했던 반민족 반민주 신문인 조선일보의 나쁜 보도들, 그 중에서도 최악의 보도 10개를 선정하여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창간 100년을 하루 앞둔 4일, 1면과 10면에 걸쳐 “과거의 오류, 사과드리고 바로잡는다”며 김일성 사망 보도 오보와 무관한 사람을 성폭행범으로 오인했던 오보 등을 사과하고 바로잡는다고 알렸습니다.

아래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ccdm.or.kr) 자료실에 소개된 ‘조선일보 100년 최악의 보도 10선’ 카드뉴스입니다.

 

 

01_ 일제 왕실에 대한 찬양과 아부
조선일보는 1938년부터 1940년 폐간될 때까지 매년 1월 1일 1면에 일본 왕실을 찬양하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천황폐하의 어성덕> <천황폐하의 어위덕> 등의 제목 아래 일 왕실을 상징하는 국화 문양을 넣고 일왕 부부의 사진을 크게 실었습니다. 기사는 대부분 일왕을 찬양하고 충성을 맹세하는 내용입니다. 가히 ‘총독부 신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02_ 일왕 생일까지 축하하는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1937년부터 일왕 생일인 4월 29일이 되면 <봉축천장가절>이라는 제목으로 대대적인 축하 인사를 보냈습니다. 특히 1939년 4월 29일에는 <봉축천장절>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단순한 ‘충성’을 뛰어넘어 ‘극충극성’을 다짐했습니다. 또한 ‘황공’이라는 말도 모자랐는지 ‘성황성공’이라 표현하고 ‘경하’라는 말 대신 ‘동경동하’라는 극존칭도 썼습니다. 일왕을 ‘지존’으로 칭한 부분에서는 쓴웃음도 짓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03_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흉악한 행동’이라 칭함
조선일보는 1932년 5월 8일 자 2면에서 윤봉길 의사의 상해 폭탄 투척의거(1932.4.29)를 특집으로 다뤘습니다. 여기서 윤 의사의 의거를 “흉행”이라 칭하며 왜곡하고 모욕했습니다. 윤 의사의 의거를 ‘소련의 명령에 따른 적화운동’이라 칭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보도를 내고도 신문의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제와 타협했다고 변명할 수 있을까요? 이런 조선일보를 과연 누가 민족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04_ 5·16 쿠데타를 지지한 조선일보
박정희와 그의 군부 추종 세력이 4·19혁명의 희생을 짓밟고 군사 쿠테타를 일으키자, 조선일보는 박정희 쿠데타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조선일보는 1961년 5월 19일 자 사설에서 “군사혁명은 민생고, 공산 적의 위협 등 이러한 불행한 여건 하에서 보다 나은 입장을 마련하기 위해 감행된 것으로서 군사적 단결과 함께 국내외적 찬사와 지지를 받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05_ 박정희 유신체제도 환영한 조선일보
1972년 10월 박정희가 선포한 소위 유신체제는 박정희 개인의 종신집권과 독재를 합리화하기 위한 쇼였습니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여기에도 아첨을 보냈습니다. 조선일보는 10월 21일 자 사설 등을 통해 유신 선포에 ‘가장 적절한 시기에 가장 알맞은 조치’ ‘비상사태는 민주제도의 향상과 발전을 위하여 하나의 탈각’ 등 찬양과 지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06_ 광주시민을 두 번 죽인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전두환 신군부가 광주 시민들을 학살한 1980년 5·18광주항쟁에서 시종일관 군부 독재 편에 섰습니다. 5월 22일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광주사태’라고 첫 보도를 한 조선일보는 광주 시민들을 ‘고정간첩에 선동된 폭도들’로 규정했고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칭했으며 진압군의 잔학행위는 ‘유언비어’라며 은폐했습니다.

07_ 광주 학살의 수괴, 전두환 찬양한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전두환 정권이 끝날 때까지 전두환에 대한 찬양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1980년 5월에는 ‘전두환 장군 특집’ 기사까지 내보내 인품과 지도자적 자질, 심지어 인간관계에도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비리를 보고선 잠시도 참지 못하는 불같은 성품”과 같은 대목을 지금 보자면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08_ 인권 유린 철저히 은폐한 부천서 성고문 사건보도
1986년 6월 발생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을 전두환 정권의 종말을 앞당긴 대표적 국가 인권 유린 사건입니다. 조선일보는 도저히 입에 담을 수는 없는 수준의 참담한 국가폭력에 대해 “성적 모욕은 없고 폭언 폭행만 했다”는 검찰 발표만 받아썼습니다. 특히 조선일보는 7월 17일, “혁명 위해 성까지 도구화한 사건”이라며 피해자를 모독했습니다. 후일 조선일보를 비롯한 언론사의 사회부장 이상 간부들과 법원 출입 기자 등이 보도 협조의 대가로 정부 당국이 준 거액의 촌지를 받았음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09_ ‘김일성 사망’ 세계적 오보 낸 조선일보의 망신
1986년 11월 16일 조선일보는 ‘김일성 피살설’을 처음 보도하더니, 17일에는 <김일성 총 맞아 피살>이라는 단정적 제목을 단 호외를 발행했습니다. 이 호외의 뒷면 기사에는 “조선일보사는 16일 자에서 김일성의 피살설을 세계 최초로 특종 보도했다”는 자랑도 곁들였습니다. 18일자 조선일보에도 7개 지면에 걸쳐 사망설을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18일 김일성이 평양 공항에 나타난 사진이 공개되면서 조선일보의 보도는 ‘세계적 오보’임이 드러났습니다. 조선일보는 19일에 <“김일성은 살아 있었다”>라는 제목의 보도를 냈을 뿐 어떤 사과도 하지 않았고, 북한의 공작 탓이라고 우겼습니다. ‘수령의 죽음까지 고의적으로 유포하면서 그 무엇을 노리는 북괴의 작태’, ‘정상적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집단’이라며 북한 책임론을 편 것입니다.

10_ ‘안보장사’의 대명사 조선일보, ‘평화의 댐’ 허위 보도
1986년, 조선일보는 북한이 금강산댐에서 대규모 방류를 감행하면 남한 전역이 물바다가 될 것이라고 거짓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조선일보는 북한의 금강산댐 방류가 악마적인 시도이며, 물을 무기화한 남침이라며 ‘반북 의식’을 조장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평화의 댐 건설 성금을 내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1993년 감사원 특감 결과 금강산댐의 위협과 평화의 댐의 필요성은 과장이었음이 드러났습니다. 야당의 개헌 주장을 봉쇄하기 위한 전두환·장세동의 합작품이었다는 것이죠. 결국 조선일보가 전두환 독재 정부의 대국민 사기극에 적극 부역한 셈입니다.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저작권자 © 한국여성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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