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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유리왕국` / 김태환

기사승인 2020.06.16  19: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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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 꽃

                                김태환

동생이 말했다
산화철보다는 저수소계 용접봉이 좋다고
불꽃도 그렇고 비이드*도 아주 부드럽게 나온다고
나는 용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자랑스레 말하는 동생이 대견하기만 했는데

비가 좀 온다 싶으면 물에 잠기고 마는 학산동 새치시장 옆
뜨거운 여름 태양에 잘 달구어진 이층 단칸방

마주 누운 형제의 가슴은 용접 불꽃만큼 뜨거워져 있었다
양쪽 귀가 용접 불꽃의 자외선에 노출되어 허옇게 껍질이 벗겨진 채
형 참 좋다
밤중인데 눈앞에서 해님이 왔다 갔다 해
능청을 떨지만 얼굴에 덮어놓은 물수건에서
흘러내리는 것은 뜨거운 눈물이었다

나도 목수 일을 배운다고 서투른 망치질을 하다가
다친 손가락이 더욱 들쑤시던 밤이었다
그렇게 형제의 눈에서 함께 흐르던 눈물이
이제는 조금 식었다 싶었는데

지금도 우연히 철공소 앞을 지나다 밖으로 새어 나오는 용접 불꽃과 마주칠 때면
가슴 한쪽에 잘린 쇳조각이 뜨끔거리며 어김없이 비이드*같은 눈물이 흐르는 것은
그때의 뜨거운 불꽃이 가슴 속에서
우리는 형제다
우리는 형제다
쉴 새 없이 용접을 해대고 있기 때문이다


*비이드 : 용접할때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형상과 형태

 

 


                유리왕국

                                김태환

귀한 손님 오신다고 반짝반짝 닦아놓은 문학관 통유리문에 이마를 부딪치는 순간.
쾅!
세상이 두 쪽 나는 줄.
그 생사를 넘나드는 순간에 왜 아라비아의 사막이 떠올랐는지?
회로가 끊어진 컴퓨터처럼
유리!
하는 순간에 경주박물관에 전시된 아라비아의 유리가 튀어나오고 사우디건설현장에 용접공으로 다녀온 개똥아부지가 난데없이 툭 튀어 나온것이다.
―사막모래는 산소로 불면 모두 유리가 돼―
그 말에 나는 칼라풀한 유리왕관을 쓴 아라비아의 공주를 생각하다가, 모닥불 피어 오르는 오아시스의 밤을 생각하다가, 별빛 쏟아지는 유리알사막을  떠올리기도 했던 것인데.
 그 개똥아부지는 소주를 오아시스의 샘물처럼 마시다가 이 생의 끈을 놓아버리고 지금도 사막에서 산소용접기로  유리를 녹이고 있을것인데.
―유리가 안깨지기 천만다행입니다―
아마도 그랬더라면
흐이유!
그래 그 짧은 순간에 필시 내가 개똥아부지를 만나고 온 것일게다.

 

현호색 꽃그림, 신가영作. 어린 시절이 아득하게 기억나면서 꽃색깔에서 위안을 갖는다.


김태환 작가의 시 두 편이 20여 년만에 만난다. 긴 시간의 기억들이 상충된다. 아우는 왜 낙천적으로만 살았을까. 매사에 긍정적이었다. 그렇지 아니하면 절망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형은 마음이 아프다. 아우의 용접공 일이 버거운 걸 모르는 바가 결코 아니다. 불꽃이라는 시를 중반에 읽다가 울었다. 시인은 말했다. 누나가 이 시를 읽고 울었답니다. 그 상황에서 어느 누나가 울지 않았을까. 불꽃이라는 시는 애닯다.
최근에 쓴 시 <유리왕국>에서 시인은 문학관 대형문에 얼굴을 부딪히면서 많이 다치게 된다. 잠시 아우를 떠올린다. 마치 아우의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형은 아우와 재회했다. 기억의 한 켠. 

김순조 기자 dd998@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여성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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