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참나무 자서전
신영애
기억을 지우니 바람이 분다
요양원 뒤뜰에 아무렇게나 자리잡은 통나무 의자들
말을 내려놓을 때마다
무뎌진 감정이 진물 흐르는 사연을 훔치는데
마음이 머물지 않아도 집이 될까
힘겹게 옮겨진 몸에는
세풍을 견딘 흔적이 옹이로 자리잡았다
어스름한 산마루에 머무는 시선
노을이 잦아들자 산 그림자 짙다
어느 서고에 한자리 차지하고
뿌리 깊은 수령을 전하고 싶었지만
골만 깊어진 몸뚱이는 바람도 머물지 못한다
재생을 멈춘 세포들은 사라지고 있다
다만
꿈결에 스치던 바람과 무성했던 온기와
산불과 병치레와 뿌리까지 흔들던 태풍을
진액이 마른 자서전에 기록해 놓았을 뿐이다
소멸을 위해 버티는 곳
아프지 않아도 아픔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며
풍장으로 사라질 날까지 끝내 그의 거처는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굴참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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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천마산 기슭에 위치한 작은 봉우리까지 올라갔다. 도토리와 밤이 곳곳에 흩어져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동행했던 이들이 주운 알밤과 도토리를 나에게 몰아 주었다. 알밤은 생으로 먹고, 도토리는 묵을 쑤었지만 맛은 쓰고 떫다. 무공해 저칼로리 식품으로 인정받는 도토리묵을 만들기엔 정성이 모자라 실패했다. 산중의 곡식을 제대로 먹는 방법을 다시 익혀야겠다.
김순조 기자 dd9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