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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옥 의사 「1대1000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식」 거행

기사승인 2023.01.31  23:2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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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후 일본 군경 1000명과 시가전 끝에 순국한 경성 피스톨

김상옥 의사(金相玉, 1889~1923)를 기리는 「일對천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식」이 31일 오후 2시,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거행됐다.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12대 회장 윤홍근) 주관으로 열린 기념식에는 유족과 보훈 관련 인사, 국회의원, 일반시민 200여 명이 참석했다.

민승 前 기념사업회장(10대)은 ‘약전봉독’을 마무리하며 정부에 김상옥 의사의 서훈 상향을 요청했다. 이어서 김 의사의 증손 김지원氏(34)가 ‘의거 이유’를 낭독했다. 유족대표로 단상에 오른 외손자 김세원氏(75)는 “순국 일백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합당한 평가와 지원을 바란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31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태극기를 들고 무대에 오른 38명의 역사어린이합창단원이 율동을 곁들여 힘차게 노래하고 있다.

 

2부 축하공연 순서에는 뮤지컬 배우 류비·박선영이 무대에 올라 ‘대한이 살았다’ ‘영웅’ ‘그날을 기약하며’를 열창했다. 이어 역사어린이합창단이 ‘태극기’ ‘압록강 행진곡’ ‘독립군가’ 세 곡을 연달아 부르며 참석자들의 박수를 이끌어냈다.

1889년 한성부 동부 건덕방 어의동(현 효제동) 출생인 김상옥 의사는 대장간 소년노동자로 일하면서 후일 공립효제국민학교로 계승되는 동흥야학(1907)을 설립하여 교육계몽운동에 힘썼다. 1912년(23세) 종로구 창신동에 영덕철물점을 개점하여 사업가로 활동하면서 3·1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이후 비밀결사 혁신단을 조직하여 일제 고관 처단, 기관 파괴 등을 추진하다 실패하고 만주·상해로 건너가 김원봉·조소앙·김구·이시영·신익희 등과 교류하며 독립의지를 다졌다.

1922년(33세) 12월 초 의열단원으로 권총과 폭탄 등 무기를 갖추고 서울로 잠입, 매부 고봉근의 삼판통(현 후암동) 집을 근거로 거사를 준비하던 중 1923년(34세) 1월12일 종로경찰서에 투탄한 후 일제 군경 1000여 명을 상대로 치열한 효제동 시가전을 벌이다 1월22일 마지막 남은 1탄으로 자결 순국하였다. 정부는 김상옥 의사의 공적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2015년 개봉한 영화 「암살」의 하와이 피스톨(하정우 扮)이 김상옥 의사를 모티브로 연출된 캐릭터였다.

 

31일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김상옥 의사 1 대 1000 항일 서울시가전 승리 100주년 기념식」에서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및 보훈 관계자, 유가족, 역사어린이합창단, 시민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성남역사문화답사회 손병주 회장 제공)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저작권자 © 한국여성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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