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서리를 걸어요
김애리샤
느리게 걸어서
나란히 걷지 못해서
발바닥엔 언제나 물집이 돋아나요
걸음이 느린 나는
모서리를 걷는 사람
비가 내린 것처럼 미끌미끌한 거기에서
뜨거워졌다가 차가워지기를 반복하는
독감 같은 날들을 앓고 있어요
지치지 않고 터지는 물집들을
밀어내지 못하며 나는,
나를 속여요
발바닥을 정성스레 닦아요
당신이 아주 잠깐 뒤돌아본 오늘
이대로 잠들어도 좋을까요
가슴을 닫으니
모든 게 캄캄하게 빛나요
생각을 멈춘다는 것
내 속에서 그대를 꺼낸다는 것
천천히 잊는다는 것
그 모서리에 서서 나는 다시 걸어요
당신과 나란히 걷지 못하는 나는
일부러 천천히 걷는 사람
그대만 모르게 그대를 사랑하는
느린 사람
―
걷다가 걷다가 생기는 발에 물집을 본다. 바늘에 실을 꿰어 몽글한 물집을 뚫는다. 바늘은 반짇고리에 담고 실은 물집을 통과하게 풀어놓고 나는 잠이 든다. 아침이면 물집이 바싹 살점에 붙어있다. 실만 살짝 빼어낸다.
어찌 그토록 걷는가. 걷기에 지치다가도 나는 앉아서 쉬는 법이 없었다. 이제는 앉아야 한다. 서 있는 건 힘만 들 뿐이다.
뼈에 좋다는 차를 주문했다. 뜨거운 물을 부을수록 뽀얀 물이 우러난다.
김순조 기자 dd9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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