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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 향한 길의 현현(顯現)… 한용운의 《잠 없는 꿈》을 읽고

기사승인 2021.04.17  23:5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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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없는 꿈 
                                                        한용운

나는 어늬날밤에 잠업는 꿈을 꾸엇슴니다

「나의님은 어데잇서요 나는 님을 보러가것슴니다 님에게 가는길을 가저다가 나에게주서요 검이어」
「너의가랴는 길은 너의님의 오랴는 길이다 그길을 가저다 너에게주면 너의님은 올수가업다」
「내가가기만하면 님은아니와도 관계가업슴니다」
「너의님의 오랴는길을 너에게 갓다주면 너의님은 다른 길로 오게된다 네가간대도 너의님을 만날수가업다」
「그러면 그길을가저다가 나의님에게주서요」
「너의님에게주는것이 너에게주는것과 갓다 사람마다 저의길이각각 잇는것이다」
「그러면 엇지하여야 리별한님을 만나보것슴닛가」
「네가 너를가저다가 너의가랴는길에 주어라 그리하고 쉬지말고 가거라」
「그리할마음은 잇지마는 그 길에는 고개도만코 물도만습니다 갈수가 업슴니다」
검은 「그러면 너의님을 너의가슴에 안겨주마」 하고 나의님을 나에게 안겨주엇슴니다

나는 나의님을 힘껏 껴안엇슴니다
나의팔이 나의가슴을 압흐도록 다칠때에 나의두팔에 베혀진 虛空은 나의팔을 뒤에두고 이어젓슴니다.

《님의 沈默》,  滙東書館, 1926

 

사진 출처: 남산 안중근의사기념관 《월간 순국》 3월호

 

ㅡ 시는 말미의 두 문장을 제외하고 대부분 ‘나’가 ‘검’과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서술되었다. 주로 ‘나’가 원하는 바를 청하고 ‘검’은 그 청을 이루어줄 수 없는 까닭을 말하고 있다.

잠 없는 꿈이란 어떤 꿈일까? 잠에 들 수 없는데 바라는 소원이 있어 꾸는 꿈을 말하는 것일까? 무엇을 원하는 꿈이기에 그러할까.

‘나’는 님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님을 보러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님에게 가는 길을 나에게 가져다 달라고 ‘검’에게 청하였다.

‘검’은 누구일까? 간절한 비원을 들어주시는 神을 상징하는가? 神을 칭하는 고어 ‘감’으로부터 기원하는 말일 수 있다.

‘나’는 ‘검’에게 ‘님 계신 곳’과 ‘님 향한 길’, 이 두 가지를 간곡히 청하였다. 길을 가져다 달라고. ‘검’은 네가 가려는 길은 너의 님이 오려는 길이라 말한다. 가는 길 오는 길 모두 같은 길이란다. 그러나 길을 가져다주면 님은 올 수가 없단다.

‘나’는 내가 가기만 하면 님은 아니 와도 된다 하였다. 길만 가져다주면 님을 만날 수 있다고, 길은 나에게만 주어지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검’은 님이 오려는 길을 가져다주면, 님은 다른 길로 오게 되므로 님을 만날 수 없다 한다. 님이 오는 다른 길이 있다니… 그 길은 나에게 주어지는 길과는 다른, 만날 수 없는 어긋난 길이란 말인가.

‘나’는 그 길을 가져다가 님에게 주라고 다시 청하였다. 길이 님에게 있으면 님이 그 길로 오면 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검’은 이 두 번째 청도 이루어줄 수가 없다. 왜냐면 너에게 주는 길이 님에게 주는 길과 같기 때문이다. 

내가 가려는 길과 님이 오려는 길이 같다. 같은 길이 아니면 서로 만날 수가 없다. 같은 길은 나에게만 있어도 아니되고 또한 님에게만 있어도 아니 된다. 그렇다면 그 길은 하나뿐인가? 나와 님을 이어주는 하나의 길이기에 어느 한쪽에만 있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일까?

‘검’은 이어서 그 까닭을 하나 더 말한다. 저마다 자기의 길이 각각 있다는 것이다. 같은 길이지만 각각 있는 길이란, 서로 오가는 하나의 길로만 이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처럼 들린다. 하나만의 같은 길이어서, 이쪽에만 있으면 저쪽에는 없게 되는, 그런 길은 아니라는 뜻이리라. 같은 길이지만 각각 있는 길…

‘나’는 어떻게 해야 이별한 님을 만날 수 있는지 마지막으로 묻는다. 이제는 오가는 길이 아니라 님을 진정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이별한 님이다. 같은 길이나 각각의 길이 있다면, 대체 이별한 님을 어떤 방법으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검’은 '너'를 가져다가 가려는 길에 주라고 한다. 쉬지 말고 그 길을 가라고 한다.  아, 자신을 온전히 길에 내주라는 의미로구나. 자신을 다 내줘야 하고,  끝도 없이 계속 가야 하는 길…

‘나’는 마침내 갈 수가 없다고 하소연 했다. 왜? 가려는 마음은 있으나, 고개와 물이 많아서 갈 수가 없다 했다. 그렇다. 자신의 목숨을 내걸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인 것이다.

여기에 살아있는 내가 갈 수 없는, 저기로 향하는 그 길은 아마도 죽음에 이르는 길이리라. 생사를 초월하지 않고서는 산을 넘고 물을 건너 갈 수가 없지 않은가.  ‘같은 길’이란 님이 간 길, 님을 따라 가는 길,  곧 초월적 세계로 이어지는 길을 의미할 것이다.

끝내 그 길로 따라 갈 수 없었기에 ‘검’은 님을 나의 가슴으로 가져다주었다. 이별한 님이 나의 가슴 안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님이 가슴에 깃들어있다는 생각은 혹여 ‘꿈’이 아닐까.

나는 님을 힘껏 껴안았다. 다시는 이별하지 않기 위해 가슴이 아프도록 팔로 한없이 껴안았다.  그런데 두 팔이 허공(虛空)을 베었다. 두 팔로 인해 가슴을 다치게 되었다.

베어진 허공은 나의 팔을 뒤에 두고 이어졌다. 갈라지고 다시 뒤이어진 허공은 님이 떠나간 길… 깨어난 꿈이었기에 님의 길이 허공이 되어 두 팔에 베어진 것일까. 두 팔은 양날을 가진 칼, ‘검’을 인격화하여 비유한 것처럼 다가온다.

두 팔의 ‘검’이 가슴으로 이어진 꿈의 길을 가른 것이다. ‘검’은 나의 가슴을 베어내고 갈라진 길로 님을 다시 떠나보냈다. 이별한 님을 보고자 했지만 나는 꿈에서도 님이 가버린 그 길을 따라 가지 못한다. 살아서는 갈 수 없는 길이기에… 그러나 그 길을 향하는 마음이 어느 밤 꿈을 꾸게 한다.  

제목을 왜 ‘잠 없는 꿈’이라고 했을까. 잠에 들 수 없거나 깨어난 상태에서 꾸는 꿈이리라. 님과 이별한 가슴은 잠들 수가 없다. 잠에 들면 가슴이 베이는 아픔으로 꿈을 꾼다. 님을 꿈꾸는 가슴을 껴안는 팔은 양날의 검이 되어 잠들지 못하는 허망한 꿈을 베어버린다. 

님과 사별하게 된 나와 님의 갈라진 길,  그 간극이 베어진 허공의 길로 형상되었다. 하지만 갈라진 나의 가슴은 ‘검’을 사이에 두고 님과 이어져있다. ‘검’은 잠 없는 꿈으로 ‘나’와 ‘님’을 매개한다. 그리고 다시 ‘나’와 ‘님’을 이어주는 꿈을 가른다. 내가 가려는 길과 님이 오려는 길, 갈 수 없는 길과 올 수 없는 길에 대한 이중적 인식이 상반되는 ‘검’의 이미지로 그려졌다. 

길을 가르고, 또 이어주기도 하는 양날의 ‘검’은 역설적이고 반어적으로 교직되는 초월적인 길의 현현이다. ‘검’을 사이에 두고 단절되어 버린 길, 잠 없는 밤의 허공에 나타나는 님 향한 길의 심상이여…

님 향한 길의 현현(顯現), 오서아 ㅡ 한용운의 《잠 없는 꿈》을 읽고

김순조 기자 dd9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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