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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1597년) 순절 만인의사 3인 추가 배향

기사승인 2021.09.12  21: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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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원성 전투 전사자 3인(김억명, 김억룡, 김억호) 위패 봉안(총56위)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만인의사에 추가 배향되는 3인의 위패를 9월26일(일) 오후 3시에 개최되는 제424주년 만인의총 순의제향에서 봉안하는 식을 거행한다.
 

2016년 만인의총관리소가 국가관리 전환 이후 처음으로 거행되는 이번 위패 봉안식에는 전남 영광군 출신(후손 거주) 김억명(金億命), 김억룡(金億龍), 김억호(金億虎) 3형제가 추가 배향된다.
이로써 만인의총은 1612년(광해4년) 7충신을 시작으로 이번에 3명의 의사를 추가 배향하여 총 56인의 만인의사를 만인의총 충렬사 내 위패로 모시게 되었다. 

김억명, 김억룡, 김억호의 업적은 「호남절의록」 뿐만 아니라, 「여지도서」 등의 자료에 조금씩 다르게 내용이 서술되어 있으나, 1597년 정유재란 당시 남원성 전투에서의 활약상은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김억명은 효성과 우애가 깊고 지극하며, 충절이 강개했다. 임진년에 그의 아버지 모재 김사모(미상~1592)가 부산 동래성전투에서 순절하자 일본의 침략에 따른 수치심에 비분강개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고자 했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두 아우 김억룡, 김억호와 의병을 일으켜 군사와 양식을 모아 함께 남원성으로 들어가, 이복남 장군 휘하에서 장렬히 싸우다가 순절했다.
 
김억룡은 김사모의 둘째 아들로 지조와 절개가 강개하고 담력이 뛰어났다. 정유년에 남원성이 포위되자 죽어서라도 원수를 갚을 것을 맹세하고, 형 김억명, 아우 김억호와 함께 이복남 장군의 진영에서 함께 싸우다 순절했다.
 
셋째 김억호는 효성과 우애가 깊고 무예가 뛰어났다. 정유년에 남원성이 포위되자 형 김억명, 김억룡과 함께 이복남의 진영에서 장렬히 싸우다 성이 함락되자 두 형과 함께 순절했다.
 
만인의총은 정유재란 당시 호남 최대 격전지인 남원성 전투에서 5만 6천여 명의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민·관군 1만여 순절의사를 모신 사적(제272호)이다. 
 
문화재청 만인의총관리소(소장 이병노)는 연구용역, 학술대회 등을 통해 사료적으로 만인의사에 대해 분석하고 충렬사 위패 추가봉안 신청을 받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만인의사 후손 찾기와 만인의사 추가 배향에 노력할 예정이다.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저작권자 © 한국여성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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