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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관잡록(稗官雜錄)](17) 금순이는 어디에

기사승인 2022.01.07  21:5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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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도다리 난간 위엔 서러운 초생달만 외로이 떴있누나

문해반 중학국어 2학년 마지막 7단원은 ‘문학작품에 나타난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는 과정으로, 첫 시간인 오늘은 「굳세어라 금순아」를 공부했습니다.

「굳세여라 今順아」는 항미원조(抗美援朝)의 기치 아래 6·25전쟁에 개입한 중공군에 밀려 전세가 불리해지자 1950년 12월15일부터 24일까지 10일간 흥남항에서 미군 10군단과 국군 1군단이 10만명의 피란민을 수송선에 실어 남쪽으로 피란시켰던 흥남철수작전(Hungnam evacuation)의 비극적 사연을 노래하고 있지요.

흥남 부두, 일사 이후 등의 낱말이 노래의 시대적 배경을 말해줍니다. 흥남철수 당시 부두에서 어린 누이를 잃어버리고 홀로 부산에 내려와 국제시장에서 노점으로 생계를 꾸리는 삼팔따라지 화자가 재회를 고대하며 잃어버린 누이를 애타게 찾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면서 나 홀로 왔다”는 절규는 사건의 처절성을 상징합니다.

대구에서 창작활동을 하던 강해인(1911~1985)은 1950년대 초반 양키시장(교동시장)에서 1·4후퇴 직전 흥남에서 월남한 ‘금순’이란 처자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부산 국제시장에서 구제옷 장사를 하다가 대구로 옮겨왔는데, 흥남부두에서 오빠와 헤어진 뒤 부산 영도다리에서 재회하기로 약속했지만 만나지 못했다는 사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이 얘기를 바탕으로 강해인은 가사를 구상했고, 같은 오리엔트레코드사(이병주 설립, 1947~1955) 소속의 박시춘(1913~1996)에게 넘겼지요. 원고를 넘겨받은 박시춘은 기타를 연주해가며 악보를 다듬은 후 현인(1919~2002)에게 연습을 시켰습니다. 이들은 오리엔트레코드사와 같은 건물 2층에 있던 오리엔트다방에서 창문에 군용담요를 여러 겹 둘러쳐 방음을 하고 밤을 새가며 녹음을 마쳤습니다. 이렇게 하여 실향민의 애환과 이산가족의 아픔이 녹아난 전시(戰時) 유행가가 탄생하게 됩니다.

아버지 고향이 흥남입니다.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 아버지 레파토리 때문입니다. 소주 한 잔과 함께하시던 그때 그 넋두리가 이젠 그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민족의 오래고 지긋지긋한 불행… 더 늦기 전에 이 대결과 갈등에 종지부를 찍어야겠습니다.

 

「굳세어라 금순아」 악보. 대구에 가게 되면 1900년대 초부터 1950년대까지 대구의 모습을 한데 모아 놓은 ‘향촌문화관’은 물론이고, 중구 화전동 14-7(교동길 14)번지에 들러 오리엔트레코드사의 흔적을 확인해보고 싶다(미리내 수입의류).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3번 출구 인근이다.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저작권자 © 한국여성연합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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