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겁, 지겁
김남권
주천 파주 식당 앞 버스정류장에
어르신 몇 분 나란히 가을 햇살을 받고
앉아 있다
제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지 황둔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지 모르는 할머니들이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묻고 호구조사를 하는 동안, 형제슈퍼에서 나온 아저씨 한 분. 빵과 우유를 할머니에게 건넨다
"에구구, 이걸 어쩌나 내가 괜히 배고프다는 얘기를 해가지고 비싼 빵을 사오게 했네"
두 시 반이 지나도록 점심값이 아까운 할머니의 혼자 말을 들은 아저씨가 슬그머니 슈퍼에 들러 빵과 우유를 사가지고 나와 무심하게 전해 주었다
할머니는 허겁지겁 빵을 먹고 우유를 마시고 허리를 편다
저렇게 수십 년을 배 곯아가며 자식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생각했을 것이다
택시비도 아까워 한두 시간씩 정류장에 앉아
햇살을 세고 있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겁 없이 걸어 다녔을 수십 리 길을
이젠 버스로 십여 분이면 도착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몇 곱절은 더 길어진
아무리 생각해도 본전 생각이 나는
겨울 버스정류장에서 점심시간을 한참 지나
아들 같은 남자가 건네주는 빵과 우유를 먹는다
속은 허해지고
겁은 많아지고
시간은 없는데
끊어지지 않는 겁劫은 기약도 없이 멀어진다
―
손녀가 둘이나 있어 할머니가 되었다. 여즉 호칭 할머니는 아직 불리지 않고 있다. 고교생이었을 때 나의 할머니는 70이 넘었었다. 내가 80이 다 되어 가니 검정색 실이 안 보인다. 바늘에 실을 좀 꿰어줄까나라고 부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부끄럼이었다.
언제나 미안한 게 할머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에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받으면 고맙다고 하면 되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김순조 기자 dd998@naver.com